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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한용운(韓龍雲)
년도 1879(고종 16)~1944 연대 근/현대

승려.시인.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정옥(貞玉), 법명이 용운(龍雲)이다. 만해(萬海.)는 법호이다. 만해(萬海.卍海)는 법호이다. 묘가 망우리묘지(묘지번호(204411) 구리지역에 있다. 1897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1896년 이후 의병에 참가하였으나. 1897년 의병의 실패로 몸을 피해 고향을 떠나 설악산의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다.

 

1905년 1월에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 득도하였으며,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해 수계(受戒)하였다. 1911년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해 8월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 일대에 흩어져 있는 독립군들에게 민족독립사상을 북돋아 주고, 여러 독립지사들과 만나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1919년 41세가 되던 해에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1운동에 참가했다.

 

그는 독립선언서 중 불만스러운 점을 수정. 가필하고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싸울 것을 선언한 공약삼장(公約三章)을 첨가하였다. 그는 체포 시 변호사와 사식(私食)을 취하지 않고 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투쟁원칙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이해 7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일본 검사의 신문에 대한 답변으로 「조선독립의 서」를 기초로 하여 제출하였다. 이 글은 독립에 대해 너무나 당당하고 논리 정연한 주장을 담아 검사도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8월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복역하였다. 1920년 복역 중 일제가 3.1운동을 회개하는 참회서를 써내면 석방한다고 회유했으나 이를 거부하여 3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1922년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조선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24년 8월 백담사에서 그의 대표적인 시집인『님의 침묵』을 완성하였다. 이 시집은 근대한국시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수록된 88편의 시는 대체로 민족의 독립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사랑의 노래로서 형상화 한 것이다.

 

1927년 1월 비타협을 원칙으로 한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를 발기하고,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같은 해 조선불교청년회의 체제를 개편하여 조선불교총동맹으로 개칭하고 일제의 불교 탄압에 맞서 불교대중화에 노력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의거가 발발하자,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민중대회를 열었다.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제가 당시 조선 유명승려를 매수하려고 하였으나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또한 1940년 일제가 실시한 창씨개명에도 반대운동을 벌였으며, 1943년에는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는 등 일제 말기까지 단호하게 투쟁하였다. 만해 한용운은 1944년 해방을 불과 한 해 앞두고 67세로 열반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으며, 1967년 파고다공원에 「용운당 대선사비」가 건립되었다. 1973년 『한용운전집』 전 6권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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